책 리뷰

[책리뷰] 슬픈 세상의 기쁜 말

Cosmic-dust 2022. 8. 1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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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세상의 기쁜 말

부제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카테고리 에세이
페이지 264P
출판사 위고
출간일 2021.08.05

 

리뷰

이전에 내가 책 선물 했었던 아는 작가 지망생 후배에게 다시 책선물을 받았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이때 할 일 하느라 오전 3시 25분에도 둘 다 안 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 2권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해서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골랐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슬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중 기쁜 말이 있다는 이야기에 제목만 보고 골랐다. 사실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냥 긍정적인 말들이 가득 담긴.. 그런 위로 에세이가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근데 막상 읽어보니 그 반대였다. '정말' 슬픈 세상에서 겨우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건네고 나 자신에게 건네는.. 그런 기쁜 말이었다. 저자는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남도의 외딴 항구의 어부를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고, 노인대학에서 뒤늦게 글자를 배우고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기도 하고, 또 시장의 야채장수 언니, 9ㆍ11 테러 생존자, 세월호 유가족, 콜럼바인 총기 사건 희생자를 만나게 된다. 

 

이런 좋은 책을 선물해주고 만나게 해준 후배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추가로 마음이 살짝 기운다(나태주) 시집도 추천해줬는데, 이것도 나중에 책 리뷰하려고한다.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면,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 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 존 버저, 『벤투의 스케치북』(김현우, 진태원 옮김, 열화당, 2012), 90면.
-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 -
우리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만큼이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도 달려 있다. 이야기 안에는 숨어 있는 사냥꾼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번 사로잡힌 이야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고 우리 삶은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들의 결론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가 가치를 두는 이야기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로 그것, 우리의 미래, 우리의 최종 결론을 암시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 -

요즘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이어령)' 책을 읽고 있는데, 지금 책 리뷰를 쓰며 돌아보니 위에 두 문장과 정말 문맥 상통하는 문장이 또 있다.

“그렇지.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그러니 이야기를 낳는 지금 우리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선생은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항상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나요?”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게. 위대한 철학이 왜 대화에서 나왔겠나. 대화는 변증법으로 함께 생각을 낳는 거야. 부부가 함께 어린아이를 낳듯이. 혼자서는 못 낳아. 지식을 함께 낳는 것, 그게 대화라네. 내가 혼자 써도 그 과정은 모두 대화야. 내 안에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서 끝없이 묻고 대답하는 거지. 자문자답이야. 그래서 모든 생각의 과정은 다이얼로그일세. 과거엔 나 혼자서 생각하고, 나 혼자서 다 만들어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제 ‘이 글은 내 거야!’ 단언하지 않아. 따져보면 내 글이란 없는 걸세. 모든 텍스트는 다 빌린 텍스트야. 기존의 텍스트에 반대하거나 동조해서 덧붙여진 것이거든. 텍스트는 상호성 안에서만 존재해.” “‘inter’의 산물이군요.” “그렇지. 내 이야기 또한 자네의 말과 어우러져 의미가 분명해지고, 새롭게 해석될 거라고 믿네. 요즘 들어 더욱 대화의 위대함을 느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부분이 바로 우리는 누군가의, 어떤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즉, 내가 지금 생각하고 하는 말도 결국 어디에선가 내가 들었던 것들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의 결론이다.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다 만들어낸 글과 말이 아닌, 결국 전부 빌린 것이다.

나도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이 나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개성 있지는 않다. 내가 말하는 건 전부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들었던 것들의 총집합이다. 내가 꿈꾸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도, 입고 먹고 자고 하는 모든 게 다 어디에선가 가져온 거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지금까지 생각도 못하고 나만의 개성 운운하며 살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 건 부모님과 선생님, 사회, 주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았던 사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 리뷰도,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문장, 문체, 지식을 여기저기에서 가져다가 넣는 거다. 과제를 쓸 때도 조사한 자료를 머릿속에서 짜깁기 하여 작성하는 것이고, 코딩을 할 때에도 기초적으로 배웠던 지식을 코드로 만들어낸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주변 사람의 영향이 정말 클 수밖에..

 

 

 

로마시대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너는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서 해방되어야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아마 이 말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불멸의 진리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당신은 타인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이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누리는지를 주로 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린다는 생각에 고통을 받는다. 반면 타인을 볼 때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무게를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이 지고 있는 무게를 가늠해보는 사람 또한 드물다. 하지만 아주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다르다. 그는 영혼에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람이 너무나 드물기 때문에 그는 전설이다. 우리는 이 전설적인 인물과의 만남을 행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 행복이 행복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남에게 무게를 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무게를 실으려는 사람은 많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타인의 무게를 느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바다로 가지요.” 그가 말한 바다는 어떤 곳일까? 느리고 잔잔하게 움직이는 물결은 우리를 달래준다.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면서 하늘에 만든 공기의 파문, 하얀 깃털 같은 흔적은 알 수 없는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주변을 잊고 오로지 자아에 몰두할 때 불어닥치는 내면의 광풍과는 다르다. 무시무시한 자아의 무게와 타인의 무게도 한나절이면 바닷물에 녹아든다. 우리의 슬픔과 서러움, 사랑과 죽음,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파도는 결코 해안선에 이르기를 포기하는 법이 없고 어쩌면 우리는 그 바닷가에 서서 아주 소중한 또 하나의 능력, ‘마음을 비우는 능력’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굵은 눈물 한 방울 짠 바다에 떨구고. 아무도 모르게. 눈맛, 무게 제로 두 단어 모두 괴로움, 인내, 허리가 휠 듯한 무게 그리고 행복감이 함께 있는 복합적인 아름다움의 단어다 
-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중 -

'너는 잘 살고 있구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말..

마음이 찔린다. 오늘 하루도 나는 존경스러운 누군가를 만나면서 '당신은 잘 살고 있군요'라는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같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모두가 고충이 있고 무게가 있다. 어떻게 저렇게 살지?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고민이 있다. 그런데 이런 타인의 좋은 면을 보고 부러워하는 건 쉽지만, 그 속에 숨겨진 무게를 보고 가늠해보는 사람은 잘 없다. 그러나 아주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게를 보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무게를 넘기려고 한다. 그 무게가 넘치면 바다로 간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각자의 슬픈 세상에서 살아남은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사는지, 어떤 기쁜 말이 그들을 살아있게 해줬는지, 우리에게 말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알아가 보는 여정이 담겨있다.

내용이 재미있어 술술 읽었다. 최근 유튜브의 어떤 영상에서 그랬다. 태어날때부터 가난한 사람이 자수성가를 하고 싶으면 그만큼 책을 읽는 방법밖에 없다고. 왜냐하면 보통 가난한 사람의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서 자수성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다양한 견문을 넓히는 데에 책만 한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나는 책에 많이 빠져있다.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다. 앞으로도 확신을 갖고 더 많은 책을 읽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들

 

  •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면,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 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 존 버저, 『벤투의 스케치북』(김현우, 진태원 옮김, 열화당, 2012), 90면.

  • 우리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만큼이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도 달려 있다. 이야기 안에는 숨어 있는 사냥꾼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번 사로잡힌 이야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고 우리 삶은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들의 결론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가 가치를 두는 이야기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로 그것, 우리의 미래, 우리의 최종 결론을 암시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가치와 같다. 내가 살리고 전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나다.”

  • “내가 오늘 하는 말 중 먼 미래에도 살아남기를 원하는 말이 있는가?”

  • 태양의 흑점을 본 다음 날, 그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보는 태양에 대해서조차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매일 태양을 보면서 아침을 느끼고 힘을 내 하루를 살았는데. 매일 해지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는 새들을 봐왔는데.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겸연쩍었다.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 전부인 듯 살면서 태양이 뜨는 것과도 같은 기적에 관해선—생명 있는 것이 모두 같은 리듬을 타게 하는 기적에 관해선—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그 뒤로 인생 최고의 깨달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오십이 되자 그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뿐 바다를 잡을 수는 없다.” 오래전 지중해 어부들이 나눠 가졌던 삶의 지혜다. 여기서 바다가 의미하는 바는 누구에게나 같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하는 삶 자체다.

  • 처음에는 “내가 지금 듣는 것은 다시는 못 듣겠지. 다시는 이야기도 못 나누겠지”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 번이고 흘러간 시간은 같은 모습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이 말은 진리다. 그 뒤로 나도 ‘열성적으로’ 들으려고 했다.

  • 한편 시간이 갈수록 새록새록 매료된 것은 할머니의 ‘말’에 대한 믿음이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나누는 대화 속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믿음을 가지고 인간들끼리 나누는 ‘말’이라는 신비 속으로 뛰어들었고, 앞날에 죽음 말고는 기다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새롭게 배우고 알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말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중이다. 다른 모든 좋은 것들처럼. 한 방에 날려버리고 말겠어, 라는 의도를 가진 말들이 넘쳐난다. 나는 말 뒤에서 독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 나는 ‘귀가 배지근해지다’라는 말 자체에도 매료되었다. ‘귀가 배지근해지다’는 다른 말로 하면 ‘눈뜨고 살다’이다. 의미 있는 말은 눈을 뜨게 만들어줄 수 있다. 좋은 목소리는 늘 내게 말한다. 눈 좀 떠봐! 그러나 아쉽게도 의미 있는 대화는 많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말조차 나는 잘 듣는 데에 실패한다. 늘 잘못 알아듣거나 대충 흘려듣는다. 할머니의 말 중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으면 천국의 모습이 바뀔지도 궁금해.” 내가 이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지구는 아름다웠다. 긴 여름날에서는 야생의 향기가 났다.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가?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았던가? 주었는데 받으려 하지 않은 것은 없었던가? 그날 나는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는 것을 깨끗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든, 우리에게 얼마나 비참한 기억이 있든 적어도 그날 하루는 생이란 대단한 기회고 앞으로 또 그런 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삶은 우리에게 끝까지 듣고 배우라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자신의 말을 들려줄 생명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는다면 바로 그때 죽음이 우리를 가르칠 것이다. 나는 생명이 주는 에너지를 듬뿍 들이마시고 한껏 귀에 담았다. 이것이 재생 에너지구나 싶었다(나는 그곳에서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 로마시대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너는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서 해방되어야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아마 이 말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불멸의 진리일 것이다.

  •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당신은 타인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이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누리는지를 주로 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린다는 생각에 고통을 받는다. 반면 타인을 볼 때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무게를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이 지고 있는 무게를 가늠해보는 사람 또한 드물다. 하지만 아주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다르다. 그는 영혼에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람이 너무나 드물기 때문에 그는 전설이다. 우리는 이 전설적인 인물과의 만남을 행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 행복이 행복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남에게 무게를 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무게를 실으려는 사람은 많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타인의 무게를 느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바다로 가지요.” 그가 말한 바다는 어떤 곳일까? 느리고 잔잔하게 움직이는 물결은 우리를 달래준다.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면서 하늘에 만든 공기의 파문, 하얀 깃털 같은 흔적은 알 수 없는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주변을 잊고 오로지 자아에 몰두할 때 불어닥치는 내면의 광풍과는 다르다. 무시무시한 자아의 무게와 타인의 무게도 한나절이면 바닷물에 녹아든다. 우리의 슬픔과 서러움, 사랑과 죽음,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파도는 결코 해안선에 이르기를 포기하는 법이 없고 어쩌면 우리는 그 바닷가에 서서 아주 소중한 또 하나의 능력, ‘마음을 비우는 능력’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굵은 눈물 한 방울 짠 바다에 떨구고. 아무도 모르게. 눈맛, 무게 제로 두 단어 모두 괴로움, 인내, 허리가 휠 듯한 무게 그리고 행복감이 함께 있는 복합적인 아름다움의 단어다

  • “빛이 안 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 해.”

  • 당신은 당신 인생의 무엇을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가? 거기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그 이야기 안에 ‘이게 내 이야기예요!’라고 할 만한 어떤 고유함이 담겨 있는가?

  • 나는 왜 혼자 힘으로는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나는 꼭 남들이 알려줘야 좋은 것이 좋은 것인지 안다. 어쩌면 이래서 타인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내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

  • “아빠 무슨 일이에요? 왜 나무들을 뽑는 거예요?” 나는 그때 아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곧 어린이날이니까.” “그게 나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나무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심어주려고.” “왜요?” “애들이 축구하다가 나무 그늘 아래서 땀도 식히고 선생님한테 야단맞으면 나무 뒤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친구랑 싸워도 나무에 기대면 좋잖아. 아무리 서러워도 어디 기댈 데가 있으면 눈물은 그치게 돼 있어.”

  • 첫 번째, 우리가 다시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두 번째, 죽음이 그토록 아쉽고, 사라지는 모든 인간적인 것이 그토록 슬픈 것이라면 삶이란 무엇일까? 삶이 이미 죽음에게 도둑맞고 있는 중이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야 삶의 소중함을 지킬 수 있을까? 세 번째,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내가 들려준 두 개의 유리창, 이 이야기의 핵심은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이 슬픈 운명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과 다른 상황은 가능했다. 성호와 오리오 파머와 소방관들 모두 그렇게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모두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삶으로 돌아가서 이 세상의 슬픔과 기쁨을 맛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유일한 희망의 말은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이다. 깨버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할 일이 없다’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비극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이제라도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계속 주위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반복’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깊게 슬퍼할 줄 아는 내 친구는 “골든타임 놓쳐본 나라의 국민으로서 말한다”는 표현을 몇 번이고 쓰면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제라도 너무 늦지 않게 구해내기 위해서.

  • 그들은 미래가 현재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미래가 현재와 똑같다면 뭣 하러 말을 하겠는가?

  • “우리가 가진 것은 목소리뿐(All I have is a voice)”

  • “배고프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Hunger gives you no choice)”

  •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

  • 세상은 서로의 차이를 서럽도록 강조하고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시간은 오싹할 만큼 창백하고 차갑게 흘러가지만,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타인은 힘겨운 지옥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고독을 뚫고 나오게 하는 것 또한 타인의 존재다. 사실, 우리가 눈물 흘리는 것도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해서 아닌가? ‘우리’가 되면 내게 일어난 많은 일은 내게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한때 혼자서만 슬퍼했던 경험이 공통의 경험이 된다. 거기서 나는 내가 아닌 척할 필요가 없다. 훨씬 더 이상적인 나인 척할 필요도 없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다. 거기서 내가 누군가를 환영한다면 나 자신도 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일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저마다의 숨겨진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단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누고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나누는 것이 치유인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랑만으론 부족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 이제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누가 말하고 있는가? 혹시 역사가? 혹시 시스템이? 혹시 상황이? 혹시 부동산 시장이? 내가 가진 것이? 나 아닌 누가 나 대신 나를 말하고 있는가? 혹시 당신 목소리를 잃었다면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 무엇을 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들어봐야 비로소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하다. ‘아, 난 이것을 원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은 한 개인의 삶에 일어나는 강렬한 해방적 순간이다.

  • 그날 내가 돌고래를 그렇게 오래 생각했던 이유를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고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돌고래를 보자 내 가슴속에 꿈 하나가 애절하게 생겨났던 것이다. ‘나도 내 삶의 형태를 가지고 싶다

  •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 계속 물었다. 온갖 동물들이 멸종되는 이 시기에,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의 여파가 속출하는 이 시기에 굳이 ‘인간’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지? 하지만 어떤 미래가 오든 미래는 결국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이 인간일 때 얼마나 우아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지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낭비하지 않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나는 네 입이 좋아. 네 숨소리가 좋아. 네가 그렇게 부드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너 혹시 알고 하는 말이야? 내가 들려준 것이 너의 이야기란 것.”

 

 

책 소개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이 인간일 때 얼마나 우아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지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남도 외딴 항구의 어부, 뒤늦게 글자를 깨우친 할머니,
시장 야채장수 언니,?9·11테러 생존자, 콜럼바인 총기 사건 희생자…
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좋은 것으로 남을, 조용히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그들의 이야기는 이 슬픈 세상에 어떤 기쁨을 만들었을까?

2021년 여름은 우리에게 침묵으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와 폭염, 우울과 슬픔 속에서 매 순간 서로 간의 거리를 확인해가며 저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다. 정혜윤 작가의 신작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이런 침묵을 이겨낼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저마다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 혹은 붙들고 살아가야 할 단어와 말에 관한 책이다. 남도 외딴 항구의 어부, 뒤늦게 글자를 깨우친 할머니, 시장 야채장수 언니에서?9·11테러 생존자와 콜럼바인 총기 사건 희생자에 이르기까지, 정혜윤 피디가 만난 이들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좋은 것으로 남을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가난, 우울, 슬픔, 끔찍한 재난에서도 이들을 살아 있게 만든 말에 관한 이야기, 회복과 재생에 관한 이야기, 각자 자신의 슬픈 세상에서 건져낸 기쁜 말에 관한 책이다. 정혜윤은 말한다. “우리가 곧잘 그 사실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지만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가장 좋은 이야기로 힘을 내고, 가장 좋은 이야기와 함께 여러 가지 압력에 맞서 싸우면서 따뜻하면서도 깊게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기쁠 것이다. 현실을 살되 마음의 한쪽에 뭔가를 품고 현실의 일부분을 바꿀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저마다 이 문제 많은 현실의 ‘해결자의 목소리’가 된다면 기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여러 모습 중 가장 좋은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자기 자신을 말하기

나의 단어, 이야기
자유, 약속, 품위
배지근해지다
눈맛, 무게 제로
하쿠나마타타
일기, 동화책, 컵
꽃이 폈어
달, B95
유리창
목소리, 이름, 우리, 인생의 전문가

나의 단어, 시와 운명
돌고래, 아더 사이드, 스틸 뷰티풀

에필로그 우리의 좋은 결말을 위해서
 

 

저자 소개

정혜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앞으로 올 사랑』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 그들의 이야기는 이 슬픈 세상에 어떤 기쁨을 만들었을까?
2021년 여름은 우리에게 침묵으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와 폭염, 우울과 슬픔 속에서 매 순간 서로 간의 거리를 확인해가며 저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다. 정혜윤 작가의 신작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이런 침묵을 이겨낼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저마다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 혹은 붙들고 살아가야 할 단어와 말에 관한 책이다. 남도 외딴 항구의 어부, 뒤늦게 글자를 깨우친 할머니, 시장 야채장수 언니에서?9·11테러 생존자와 콜럼바인 총기 사건 희생자에 이르기까지, 정혜윤 피디가 만난 이들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좋은 것으로 남을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가난, 우울, 슬픔, 끔찍한 재난에서도 이들을 살아 있게 만든 말에 관한 이야기, 회복과 재생에 관한 이야기, 각자 자신의 슬픈 세상에서 건져낸 기쁜 말에 관한 책이다. 정혜윤은 말한다. “우리가 곧잘 그 사실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지만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가장 좋은 이야기로 힘을 내고, 가장 좋은 이야기와 함께 여러 가지 압력에 맞서 싸우면서 따뜻하면서도 깊게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기쁠 것이다. 현실을 살되 마음의 한쪽에 뭔가를 품고 현실의 일부분을 바꿀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저마다 이 문제 많은 현실의 ‘해결자의 목소리’가 된다면 기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여러 모습 중 가장 좋은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수년 전, 작가는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했다.〈자기 자신을 말하기〉. 누구나 출연할 수 있지만, 출연자 모두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이 하나 있다. 그 규칙은 자기 자신을 말하되 특정한 단어 몇 가지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안 된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이라는 단어를, 서점 주인은 ‘서점’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즉 그 단어 없이는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없는 단어가 금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을까?
자기 자신을 말하는 단어를 찾는 것은 쉬워 보여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단어를 찾으려면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늘 보던 대로 자신을 보고, 늘 하던 이야기만 해서는 단어를 잘 찾아낼 수도, 설령 찾았다 해도 말할 방법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마음의 변화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제대로 말하기는 훈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일단 찾기만 하면,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보르헤스가 ‘언어 공동체에서 우리의 의무는 우리의 말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면 작가는 말한다. 단어를 찾는 것은 부적과도 같은 힘을 주고, 단어를 찾는 것이 곧 회복이라고. “새로운 세계의 창조 앞에는 언제나 언어와 이야기가 있어왔다. 그러니 살아 있는 자의 심장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부드럽게’ 각인되고 남아서 우리의 자아를 바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드러움 중 가장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것은 인간의 변화다.”

● 당신의 고유한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나는 살아 있는 자의 귀로 듣겠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조용히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스로 한 약속을 평생 친구처럼 데리고 다니는 어부, 인생 말년에 이르러 ‘귀가 배지근해지도록’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 할머니, 눈맛을 아는 낚시꾼, 떡집 아줌마의 인생의 멘토 야채장수 언니, 세월호에서 아들을 잃은 아빠와 911 테러에서 형을 잃은 동생, 컬럼바인 총기사건의 생존자…. 이들의 삶은 같지 않다. 살아온 삶의 궤적도, 현재의 위치도, 자신 앞에 닥친 시련도. 하지만 이들은 같은 세계에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단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는 기쁨을 누려봤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온갖 동물들이 멸종되는 이 시기에,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의 여파가 속출하는 이 시기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책의 끝에서 담담하게 말한다. “어떤 미래가 오든 미래는 결국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이 인간일 때 얼마나 우아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지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낭비하지 않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당신을 당신으로 만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당신이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야기도 들려달라. 두꺼운 고독을 뚫고 나오게 했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당신의 고유한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나는 살아 있는 자의 귀로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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